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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교회와 교회 지도력

By Jayhoon Yang

Stock hymnal and bible on back of pew

“뉴 노멀 시대에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회가 어떻게 살아남을까’에 정신 팔려서 테크놀로지와 기술, 노하우 등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교회는 생존을 걱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존재다. 내 살 궁리나 하는 교회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왜 교회는 자신이 누구인지 망각하고 자기만 쳐다보고 있는가? 눈을 들어 세상을 보라!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세상 또한 그 거룩함으로 변화시키는 존재가 교회 아니던가?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을 회복하는 것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ad fontes)에서 시작한다.”

4차 산업 혁명과 코로나19

2016년 세계경제포럼의 의제로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주제가 올라왔다. 인간의 물리적 노동력을 기계가 대체한 1차 산업 혁명, 컨베이어 시스템을 활용하여 분업화와 대량 생산 체계로 전환된 2차 혁명,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인터넷 등의 통신 시스템의 발달로 지식 정보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3차 혁명 시대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인공 지능(AI),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사물 인터넷 등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근육뿐만 아니라 인간의 두되 활동까지도 전자 기계 시스템이 대체하게 되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문지방에 인류는 서 있다.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논의가 있고 난 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새 시대의 현상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인공 지능 변호사 로스(Ross)와 의사 왓슨(Watson)은 인간에 전혀 뒤지지 않았으며, 조지아공대의 인공 지능 왓슨(Jill Watson)은 퀴즈 대회에서 사람을 손쉽게 물리쳤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에서 세계 제일의 이세돌이 완전히 패배한 모습은 세계인들에게 인공 지능에 대한 공포심마저 갖게 했다. 실제로 무인 상점인 아마존고(Amazon Go), 테슬라의 자동 운전 시스템은 어느덧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일상이 되었으며, 이러한 것이 더욱더 많은 영역에 있어서 일상화할 경우를 대비하여 기본 소득이나 로봇세 등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코로나19는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단어를 잠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고, 세상은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상의 많은 것들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기존의 것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대체한 것도 있고,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그렇지 않았다는 것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놓은 것들도 있다. 또한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두려움으로 머뭇거리던 우리를 선택의 고민을 할 여유도 없이 그냥 등 떠미는 바람에 우리도 모르게 어느덧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일들이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 것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 교회, 예배 등에 대한 내용과 형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물리적 공간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모여서 드리던 예배가 유튜브나 실시간 화상 등 비대면 디지털 시스템을 통한 예배로 방식이 바뀐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예배가 온라인 예배로 바뀌어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이것을 예배로 인정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마음의 갈등을 겪어야 했고, 어떤 이들은 2천 년 전 박해 시대에도, 전쟁 중에도 그치지 않았던 예배가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렀다면서 오프라인 예배를 순교자의 마음으로 사수하고자 했다. 이러한 상황은 ‘믿음’이나 ‘구원’ 등의 종교 개혁적 키워드의 위압에 눌려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교회론적 질문과 ‘예배란 무엇인가?’라는 예배학적 질문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돌려놓는 기여를 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사회나 교육계는 미래에 우리 사회, 우리 학교는 어떻게 될 것이며 우리는 새로운 일상(New Normal)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교회도 앞으로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이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이 충격적인 격동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하고, 그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정도의 격변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학교와 교회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일정의 활동을 하는 것이 학교와 교회가 생긴 이래로 지금까지 수천수만 년 동안 변함이 없었던 양태였는데, 불과 몇 달 만에 그 모든 것이 우르르 다 무너졌기 때문이다.

교회의 모든 모임도 주춤하기 시작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무엇인가 벌어지던 교회가 일제히 멈췄다. 새벽예배, 오후 예배, 수요예배, 속회 모임, 성경공부, 새신자 양육, 선교회 모임 등 셀 수 없이 많던 그 모든 모임이 꿈같이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주일 낮 예배조차도 마스크를 쓰고, 2m 거리를 두고, 발열 체크와 QR코드를 통한 신원 확인을 해야 하고, 성가대의 찬양조차 사라졌으니, 이런 일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성도들뿐만 아니라 목회자들에게 있어서도 큰 위협과 걱정거리로 다가왔다. 온라인 방식으로 예배의 형태가 바뀌면서 걱정스레 던져진 질문은 ‘이런 상황이 지속할 경우 과연 교회는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미래 사회는 대면과 비대면 환경이 공존할 것이며, 이것은 사회, 학교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유효할 것이다.

교회의 문제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교회는 과연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교회가 살아남는다면 그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교회에서 비대면 소통 방식(digital interface)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존재이며, 비대면 환경이 단점도 있지만, 나름대로 많은 장점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은 편리성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며, 대면 환경의 가치와 그 순기능을 오랜 역사를 통해 배웠기 때문에 대면 방식 또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즉, 미래 사회는 대면과 비대면 환경이 공존할 것이며, 이것은 사회, 학교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유효할 것이다.

교회의 미래를 말하면서 우리는 우선 대면–비대면을 논하고 걱정한다. 그러나 대면과 비대면은 병행할 것이고, 정작 교회의 미래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대면이나 비대면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앞으로 한국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한국 교회가 처한 현실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2020년 1월, 기독교윤리실천에서는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설문 조사를 했다. 이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3.9%가 한국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개신교의 신뢰도는 천주교나 불교의 2/3 수준에 머무르는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가 개신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과 한국 교회의 배타성 때문이었다. 사회를 돌보고 섬기는 부분에서는 한국 교회가 천주교나 불교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사회를 섬기는 종교라고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부정적인 종교로 손꼽히는 이유는 한국 교회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세상을 향한 섬김과 봉사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실제로 천주교나 불교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정도로 한국 사회를 돌보는 일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하였다. 그런데 왜 한국 교회는 이런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가? 그것은 이 설문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과 배타성 때문이었다. 한국 교회가 배타성을 지적받는다는 것은 자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파악도 못 하고 자기 착각에 빠져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설문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대해 75.5%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상당수의 타 종교인 64.8%와 무종교인 78.2%는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즉, 교회 밖에서는 교회가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정작 교회 안에서는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잘하고 있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시대를 살면서 많은 교회가 ‘어떻게 하면 교회를 지킬 수 있는가’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럴싸한 질문을 솔직하게 다시 묻는다면, 결국 ‘어떻게 우리 교인 숫자, 재정 상태, 교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뉴 노멀, 비대면, 미래 시대의 각종 기술(technology)의 도입과 활용에 관심이 많다. 유튜브, 실시간 화상 시스템, 보다 혁신적이고 효과적 기술과 장비를 구입하고 그런 인력을 확보하고, 그것을 위해 재정을 ‘투자’하고자 한다. 교회는 이미 이런 전략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했다. 한때 개그콘서트가 히트 치던 때에 교회학교는 개그맨 흉내를 내고 패러디하는 데 급급했다. 그러나 개그콘서트는 결국 폐기 처분되었고, 교회만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위의 설문 조사가 보여주듯이, 사회봉사를 그리 열심히 하는데 왜 교회는 외면당하는가? 무슨 양육 프로그램이니, 아카데미니 온갖 방법을 동원했는데 왜 교회는 손가락질당하는가?

교회의 미래

교회는 어떤 존재인가? 에클레시아, 즉 ‘따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는 이 단어의 뜻대로, 교회는 세상과는 구별되는 고유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 물질만능주의로 대변되는 21세기 세계관에 대항하여 ‘맘몬(Mammon)이 아닌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외치고, 직접 삶으로 실천해 보여야 하는 존재가 바로 교회다.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에 대해 말이 많지만, 결국 인간이 지켜야 할 선을 지키지 못하고 끝도 없는 탐욕을 부린 결과가 아닌가? 글로벌 경제라는 명목으로 세계가 돈으로써 서로의 목줄을 움켜쥐고, 서로 앞다투어 맘몬 탑을 쌓고 있지 않은가? 경제 성장, 경기 활성화라는 달콤한 논리로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어 하나님도, 이웃도 안중에 없이 그저 창고를 늘리고 보화를 쌓아두는 어리석은 부자 놀음(누가복음 12:16~20)을 하도록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교회 역시 이 가락에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추고 있으니, 교회가 교회답다고 말할 수 있는가? 목회자는 영적 지도자가 아닌 설교 피고용인이 되었고, 이 사설 제사장은 자기 주인의 귀를 간지럽히며 심기 관리에 열 올리고 있지 않은가(사사기 17~18장)? 교회 힘은 무력이나 재물, 권력이 아닌 존경과 권위에서 나온다. 교회가 세상 권력, 무력과 재력을 가졌을 때 부패하지 않은 적이 없고, 그 결과 세상은 교회 앞에서는 당장의 이익을 위해 굽신거릴지언정 뒤에 가서는 손가락질을 했다.

그렇다면 교회가 앞으로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첫째, 거룩함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과 똑같이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부귀영화와 권력, 외형적 성장과 성공을 탐하면서 맘몬을 섬긴다면,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처럼 흩어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사람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마가복음 8:33)을 걸을 때, 하나님 앞에 가난한 마음으로 무릎 꿇을 때(마태복음 5:3), 깨끗해진 우리 그릇에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고, 흩어졌던 우리를 다시금 하나로 묶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사도행전 2:4~11), 그 능력을 힘입어 증인의 본질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사도행전 1:8).

둘째, 세상을 향한 진솔한 마음과 열린 태도를 갖고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동안 교회는 한국 사회를 돌보는 데 크게 기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그 순수성을 의심받았기 때문이다. 위선자들이 큰 자선을 베풀면서도 지적을 받은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의도의 순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마태복음 6:1~4).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도 함께 열어주어야 한다.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품어 주기보다는 배타적인 태도로 정죄하고 차별했던 그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빈부 격차, 정보 격차, 기술 격차, 지식과 교육의 격차를 더 넓혔고,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사회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마태복음 5:9)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경쟁에서 뒷전으로 밀려난 이들을 진심으로 보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교회는 이웃의 아픔을 애통하고 그들을 위로해야 한다(마태복음 5:4).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상황이 일상화되고 많은 이들이 사회적 거리를 두면서 서로 분리되고 있다. 외로움과 소외, 쓸쓸한 나날들로 코로나 우울증(Corona Blue)을 겪고 있다.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은 공동체성의 회복이다. 교회는 공동체성이라는 말을 신자 공동체로 한정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는 스스로 자신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다. 교회는 교회 울타리를 넘어 모든 공동체를 생각해야 한다. 이웃 공동체는 국가나 지자체만의 몫이 아니라 교회의 몫이다.

넷째,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존재로서 생명 회복에 앞장서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와 코로나19 사태는 비인간화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생명조차도 경제 논리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현상을 우리는 미국의 코로나 사태를 통해 목도하고 있다. 기술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비인간화는 가속할 것이고, 인간의 풍요로운 여유와 편리를 위해 생태계는 더욱 신음하게 될 것이다(로마서 8:22). 정복하고 다스리는 존재(창세기 1:28)가 아닌 모든 만물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깨닫고(욥기 38~41장), 겸손히 낮아지는(욥기 42:3~6) 자세로 하나님의 생명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뉴 노멀 시대에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회가 어떻게 살아남을까’에 정신 팔려서 테크놀로지와 기술, 노하우 등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교회는 생존을 걱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존재다. 내 살 궁리나 하는 교회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왜 교회는 자신이 누구인지 망각하고 자기만 쳐다보고 있는가? 눈을 들어 세상을 보라!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세상 또한 그 거룩함으로 변화시키는 존재가 교회 아니던가?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을 회복하는 것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ad fontes)에서 시작한다.

양재훈 목사 Ph.D
협성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LID Leadership Journal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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