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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교회의 미래 (2)

By Heecheon Jeon

Congregation worshiping in church

교회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 나아가기 위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거대한 문화 현상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비판 계승할 것인가? 필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거대한 문화 현상을 교회가 극복해야 할 세속화 과정이라고 보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교회 모델을 세우기 위해서 주의 깊게 주목해야 할 철학적 문화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기독교 교회가 존속해 온 방법이 끊임없이 시대정신에 걸맞은 신학적 응답을 해 왔기 때문이다. 반사회적, 반문화적 체질을 교회 안에 배양한다면, 교회의 한 줄기의 전통은 유지할 수 있어도, 그 시대에 맞고 미래를 지향하는 교회를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제시하는 긍정적인 교훈을 시대정신이라는 범주에서 재해석하고 기독교 교회가 창조적으로 수용할 때,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다시 시대정신을 주도하는 교회로 개혁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교회는 “자기 성찰적 타자의 발견”에 주목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한마디로 말하면 “타자,” 즉 “역사의 뒤안길”에 흔적으로만 남아 있던 것들을 전면에 부각하는 운동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지금껏 “나” 내지는 “주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타자는 단지 “객체”나 “지배의 대상”으로 살아간다. 주체는 권력과 부를 앞세워 하나님까지도 통제하고 주변인으로 전락한 “나머지 인간과 자연 세계”를 지배하고 억압해 왔다. 이런 주체 억압의 결론 중 하나는 자본주의와 군사주의를 앞세운 강대국들이 일으킨 세계대전으로 인해 희생된 수천만 명의 생명이었고, 무분별한 산업화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였다. 그래서 “자기 성찰적 타자의 발견”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윤리적 인간성 회복을 위한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프랑스 출신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18세기 독일의 관념주의를 중심으로 발전한 근대의 자기중심적 인간 주체성을 해체하고, 타자의 얼굴에 비친 자아상이 인간의 진정한 주체라고 주장한다. 인류가 세계 1, 2차 대전을 경험하면서 근대주의가 주창한 인간 이성을 근간으로 한 이상적 인간 주체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심각한 윤리적 도전에 직면했을 때, 레비나스는 주체는 타자의 존재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가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시장체제로 인해, 윤리적 인간성을 상실했다고 하면, 이를 극복할 방법은 타자의 발견이다. 20세기 초 마틴 부버는 이미 나와 타자를 동일한 주체로 보고, 타자를 향한 주체의 윤리적 책임을 말했다. 부버의 한계는 타자를 주체로 부각하는 데는 성공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여전히 타자도 “주체”의 카테고리에 갇혀있다. 여기에 레비나스는 타자의 존재가 나라는 주체를 해체할 수 있는 유일한 윤리적 근거가 된다고 한 발 더 나간다. 다시 말하면, 내 안에 타자가 공존하며 동시에 그 타자가 나를 지배하며 존재 이유를 결정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윤리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은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지배의 대상으로만 간주하였던 “우리 중에 가장 작은 자”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들이 그리스도와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은 온전한 타자의 발견임과 동시에, 주체의 존재 이유가 전적으로 타자에게 있음을 일깨워준다. 여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자기성찰적 타자의 발견이 윤리적 인간 주체성의 근거임을 제시한다. 타자는 이방인, 여자와 아이, 소수 인종, 성 소수자,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 난민, 전쟁고아, 성폭력 피해자 등으로 이들은 더는 나와 별개인 그저 “나”의 자선의 대상자들이 아니다. “나”라는 주체 안에서 이들을 자기성찰적으로 발견하고, 이 불가항력적인 타자들로 인해 “나”라는 존재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더 나아가 나 자신도 타자의 고통을 목격하는 순간 스스로가 또 다른 피해자나 피억압자가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지구화 시대를 맞이하여, 더 많은 그리고 더 다양한 “타자”를 우리는 (대)접한다(hosting; hospitality). 이런 다양하고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교회가 전통(tradition)과 정통(orthodox)의 벽을 넘어 지구촌의 70억의 인구와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대안 공동체로 탈바꿈되면, 포스트모더니즘과 교회는 창조적으로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포스트모던 시대의 교회는 영성과 종교의 긴장 관계를 극복해야 한다. 미국의 많은 젊은 세대들(밀레니얼 세대: 1998년 이후 태생)은 교단이나 종교에 가입하여 종교 생활을 추구하기를 거부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종교가 제공해 주는 영적인 삶까지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나는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다(spiritual, not religious)”라는 말로 자신들의 종교 생활 현주소를 표현한다. 종교적 가치를 거부하기보다는 다른 차원과 방법으로 종교에 접근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해체주의자인 자크 데리다는 “종교가 아닌 종교”(religion without religion)라는 말로 전통적 종교의 제도권, 즉 율법과 질서, 안정과 시스템을 해체하고 운동으로서의 종교를 지향한다. 그래서 그는 중세 기독교의 수도원에서 비롯된 부정의 신학이나 유대교의 카발라 신비 운동의 영향을 받고 부정과 긍정의 긴장 관계 속에서 새로운 영적 영역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독일 중세 수도사이자 신학자였던 마이스트로 에크하르트는 그의 유명한 기도문에서 정통의 벽을 깨뜨리고 인간이 언어로 상상할 수 있는 신적 개념을 끊임없이 부정하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하려고 시도한다: “주여, 제 안에 있는 하나님을 제거하여 주옵소서”(O Lord, rid me of God in me). 종교라는 제도와 전통 신학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하나님을 해방하는 것은 인간을 종교로부터 해방하고 자유로운 영성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을 종교적인 언어로 해석하면 21세기 부정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에큐메니컬 운동이나 종교 간의 대화라는 시대적 과제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생각한다. 지난 이천 년의 기독교 역사 또는 세계 종교사를 살펴보면, 종교 전쟁은 교회가 거대한 정치 권력과 결합하여 오직 일률적 정통 신학만을 고집했을 때 발생하고 그 대가로 막대한 희생을 요구했다(이슬람과 기독교의 충돌, 근대식민주의, 동서양의 갈등). 미래의 교회는 이런 정통과 전통에 갇혀 있는 교회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이 교회를 향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미래의 교회가 “제도권적 교회” 또는 종교라는 거대담론(grand theory; metanarrative)를 극복하면, 하나님을 경험하는 개인적 영성이 사회 변혁의 영성 운동으로 확장해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그러면 초대교회처럼 포스트모던 교회가 영적 운동으로 환원될 것이다.

셋째,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에게 지구 생태환경의 위기와 이에 따른 연대책임의 필연에 주목하게 한다. 자연과 문화(nature and culture)는 끊임없는 긴장 관계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자연과 더불어 삶의 가치를 발견해야 하고, 그것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문화가 형성된다. 그러나 근대 산업화와 신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자연과 문화의 상호 협력의 관계가 지배와 억압의 관계로 변질하고,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자연 세계를 훼손하고 만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는 급속의 발전론에 갇혀 자연에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고 마구잡이로 개발하면서 전인적인 발전의 기초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윤리적 인간성을 상실함과 동시에 지구 생태환경은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프랑스의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인 질 들뢰즈는 라이좀(rhizome)이라는 수평적으로 끊임없이 연결고리나 거미줄 망처럼 확장하는 지하경 이미지를 사용하여, 정보와 지식 사회가 내재한 엄청난 우주적 관계망을 설명한다. 자연과 문화가 유기적으로 라이좀처럼 연결되어 있다면, 인간과 자연은 끊임없는 관계망을 확장하고 상호 협력하는 관계를 지향해야 서로에게 이로운 다원성과 다양성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후가 변화하고 자연재해가 늘어가고 있고, 특정 동식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하면서 생태계가 파괴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이 자연에 미친 억압적 영향과 동시에 이제 자연이 인간에 보여준 재앙을 관계망이라는 개념으로 재조명하고 반성해야 할 때다. 미래의 교회는 당연히 이런 관계망 안에 놓여있게 된다. 서로서로 알지 못하고 외면하면(sanctioned ignorance) 상호 협력하는 관계가 아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은 인간에게 여전히 극복의 대상이 되고 지배와 개발의 대상이 된다. 인간성이 상실한 산업화의 폐단이 바로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당연히 이런 자연환경을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 협력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주체로 초대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보존은 환경을 깨끗이 하는 것뿐 아니라, 이런 복잡 다원화된 관계망 속에서 인간 실존의 현주소가 있고, 바로 이 상호 협력 관계가 하나님의 창조 섭리임을 교회가 앞장서서 강조해야 한다.

넷째, 탈식민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은 국가주의, 민족주의, 부족주의(tribalism)라는 자기중심적 편협한 이념 체제를 비판하고, 세계주의라는 인류 보편적 이념을 지향하고, 인류가 서로 화합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세계공동체를 발전시켜가고자 한다. 연합감리교회에도 여기에 발맞추어 지구적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사명을 품고, 연합감리교회 총회는 1988년 전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한 아프리카대학교 설립을 결의하고 1992년에 완공했다. 지금, 이 대학은 아프리카에서 최고의 사립대학 중 하나로 성장하여 세계를 향한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데 일목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대학교는 팬 아프리카의 경계를 뛰어넘어, 전 세계의 학생들을 모집하고 그들을 세계적 지도자들로 양성하여 미국과 전 세계에 내보내고 있다. 이처럼 연합감리교회는 코스모폴리타니즘과 지구 교회라는 비전을 가지고 존 웨슬리가 주창한 “세계는 나의 교구”를 실현할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점은 지구적 교회는 서구 유럽이나 영미권의 기독교적 패권주의에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가장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나라들, 즉 수백만 명의 난민들과 이주 노동자들로 인해 사회가 극도로 불안정한 국가들로부터 지구화의 역이동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이주민과 난민들이 나라에서 나라로 이동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이들로 인해 지구 전체 사회가 변화의 물결에 놓여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탈식민주의 문화 비평가인 호미 바바(Homi Bhabha)는 국가의 경계선에서 방황하는 이주민 또는 이주 노동자들이 국가라는 개념을 초월하여 새로운 혼종의 문화(hybridity)를 만들어내고 기존의 국가 개념을 허물어뜨린다고 역설한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경계선의 틈바구니에서 국가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노매드(유목민)처럼 살아가지만, 역설적으로 새로운 다국적 문화를 바탕으로 한, “제삼의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연합감리교회가 지향하는 지구 교회는 이처럼 국가라는 경계선을 넘어 마치 아프리카대학교에서 국제 난민촌에 이르기까지 소위 “제삼의 공간”에 실존하고 있는 코스모폴리탄 세계 시민들(난민, 이주 노동자 등)을 환영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포스트모던 교회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는 인간 가치론에 대한 새로운 성서적 해석과 신학적 이해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매장되기 쉬운 개별적이고 상황적인 인간의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할 수 있는 신학의 재구성과 함께,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가 이것을 개방적이고 건강하게 수용함으로써 다양한 인간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 사랑이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인종차별, 성차별, 성 소수자 차별, 계급적 차별 등의 억압적 차별주의는 여러 가지 사회적 불평등 구조 속에서 형성되어 교회를 분열시키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적대하고 분열을 조장한다. 이런 사회악과 같은 차별주의는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할 수 없게 하고 오히려 억압하게 하며, 인간성을 보존시키는 기독교의 보편적 가치(사랑, 평화, 그리고 정의)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인간은 결정된 “자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 형성된 사회적 규범과 문화적 가치에서 비롯된 행동 양식 또는 행동성(performativity)에 의해서 특정 자아(a self)로 형성되거나(become), 창조(create) 또는 구성(construct)된다고 역설한다. 이런 후기 구조주의적 인간 이해는 보편적 진리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상황 윤리적이고 개별 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자아”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이다. 이는 동시에 억압되었던 인종과 성과 계급의 개념에서 인간을 해방하려는 노력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교회는 여기에 신학적이고 교회론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연합감리교회는 지금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 단순히 과거 전통(tradition)과 정통(orthodoxy)이라는 신학적 범주에만 머물러 있으면, 교회는 다가오는 미래와 변화무쌍한 현재를 간과할 수밖에 없다. 구성적 자아(constructed self)가 내재하고 있는 것은 다양한 가치의 가능성이며, 수직적 구조를 해체하고 수평적 구조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단초가 되기 때문에 교회가 이를 창조적으로 수용할 때, 새로운 인간형 그리고 새로운 인간의 가치를 구성하고 미래를 향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 서 있다. 시계의 추가 좌와 우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시간의 흐름을 맞춰가듯이, 대변화의 물결을 타고 요동치는 사회와 문화의 흐름에 맞추어 교회도 적극적으로 개혁하고 탈바꿈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한 시대의 정신이며 문화 현상이기도 하지만, 2500년의 서구 정신 문화사를 뒤흔든 거대한 사상의 축이다. 그리고 세계는 더욱 좁혀지고 있고, 국가나 민족의 개념이 희미해지고 세계주의적 사고를 하는 이웃 또는 지역 사회 공동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타자 중심적 사고로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며, 이로써 새로운 인간형에 대한 예상과 기대, 그리고 인간 가치의 재구성과 창조적 수용이 반드시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가능하다면, 교회는 다시 이 시대가 요청하는 대안 공동체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지구적 교회는 현재 진행형이면서 미래지향적 교회다. 교회는 국경을 넘어 복음을 전파할 사명이 있듯이, 지금 우리의 지역 교회가 다문화를 지향하는 지구적 교회로 발전해 갈 때, 국가의 경계선에 갇혀있는 나라와 민족의 개념이 사라지고 세계 시민사회를 주도하는 교회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교회의 미래 (1)

전희천 목사 Ph. D.
아이오와연회 Riverview Park District 감리사
LID Leadership Journal 2019


참고문헌

  1. Bhabha, Homi, ed. Nation and Narration. New York: Routledge, 1990.
  2. Bhabha, Homi. The Location of Culture. New York: Routledge, 1994.
  3. Butler, Judith. Gender Trouble: Feminism and the Subversion of Identity. New York: Routledge,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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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Deleuze, Gilles, and Guattari, Felix. A Thousand Plateaus -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1980 TP) trans. Brian Massumi.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Minneapolis, 1987.
  7. Derrida, Jacques. Acts of Religion. Edited by Gil Anidjar. London: Routledge, 2002.
  8. Lyotard, Jean Francoise. The Postmodern Condition: A Report on Knowledge. Translated by Geoff Bennington and Brian Massumi.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4.
  9. Levinas, Emmanuel. Totality and Infinity: An Essay on Exteriority. Translated by Alophonso LIngis. Pittsburgh, PA: Duquesne University Press, 1969.
  10. Levinas, Emmanuel. Otherwise than Being or Beyond Essence. Translated by Alphoson Lingis. Dordrecht and Boston, MA: Kluwer Academic Publisher,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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