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의 공동체, 성품의 목회
By Young Bong Kim
2. 왜 성품인가?
성품이 목회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바울 사도가 분명히 말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자로서 가장 먼저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디모데전서 4:7)라고 권면한다. 이것을 영어로는 Spiritual Formation이라고 말한다. 우리 말로 직역하자면 ‘영성 형성’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보다는 인격 혹은 성품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영성 형성은 인격과 성품의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것을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베드로후서 1:4)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목회자가 가장 먼저 마음을 쓰고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할 때 목회자가 젊다고 하여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고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될”(디모데전서 4:12) 것이라고 말한다. 목회자의 권위는 성숙한 신앙 인격에서 나온다. 얼마 전, 조지 부시 대통령이 고 빌리 그래함 목사에 관해 쓴 추모의 글에서 그래함의 ‘존재감’(power of presence)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증언한다. 아무 말 하지 않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것이 신앙 인격의 힘이다. 그것은 말씀과 은혜로써 빚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받은 것”(디모데전서 4:14)을 귀중하게 여기라고 권한다. 목회자의 인격은 영성에 근거한 것이기에 성령의 은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하지만 성령의 은사는 흠모할 만한 성품과 인격으로 꽃을 피워야 한다.
사도는 성품과 인격에 있어서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디모데전서 4:15)라고 권한다. 성품과 인격에 있어서 완성은 없다. 숨이 다할 때까지 마음을 두고 시간을 들여 갈고닦아야 한다. 그래서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라”(디모데전서 4:18)라고 권한다. “삼가라”는 조심하여 살피라는 뜻이다. 목회자는 교인들을 살피기 이전에 자신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의 이익과 편안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과 말과 행실을 늘 살펴서 흐트러짐이 없도록 챙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할 수 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언제나 목회자를 먼저, 목회자의 인격과 성품을 먼저 강조한다. 그만큼 목회자의 인격과 성품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민교회의 상황을 고려할 때 신앙 인격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민교회의 취미는 분열이고 특기는 싸움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갈등과 분규가 많은 것이 이민교회이다. 그와 같은 현실을 만들어 내는 요소가 여러 가지일 것이다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목회자의 인격과 성품의 문제이다. 물론, 평신도의 문제도 없지 않다. 어떤 사람이 “교회는 병자들이 모인 곳 아닙니까?”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정말 심하게 병든 사람들이 교회 안에 적지 않다. 때로는 목회자의 목회로는 도무지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목회자의 성품과 인격에 갈등과 분열의 뿌리가 있다. 교회를 떠나 사는 소위 ‘가나안 교인’들을 만나서 교회를 떠난 원인을 물어보면 열에 일곱 혹은 여덟은 목회자의 성품이 원인이었다.
이민교회 목회자들의 문제가 더 심한 원인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이민 사회에서 목회자들을 배출해 내는 시스템에도 어느 정도의 원인이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소명과 상관없이 신학 공부를 하고 내친김에 목사 안수까지 받는 경우가 많다. 그들 중에는 충분한 교육과 검증과 훈련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원인은 이민 목회의 현장 안에 있다. 이민교회는 한국 교회와 달리 목회자의 권위가 자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한국 교회는 목회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심이 아직도 남아 있다. 반면, 이민교회는 목회자가 권위를 ‘얻어내야’ 한다. 하지만 목회자로서의 존경과 권위를 얻어내는 일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신도들과 같은 자리에 서서 함께 살아가면서 영성과 인격과 삶의 질을 통해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불행하게도 많은 이들이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자신을 완전히 개방하고 살아가면서 영적 감화력을 끼칠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민교회는 절대다수가 자립하기 어려운 수준의 소형 교회들이다. 중형 혹은 대형 교회로 성장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 가고 있다. 한국으로부터의 이민은 점점 줄어들고 오히려 역이민이 더 많아지고 있다. 교포 자녀들은 한인교회에 정착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한인교회 목회는 전보다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교회로의 성장을 목표 삼고 목회하는 것은 자신을 패배자로 만드는 일이다. 중형 혹은 대형 교회로 성장하지 않더라도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목회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또한, 교회의 생태계를 생각할 때 건강한 중소형 교회들이 많아지는 것이 훨씬 건강한 일이다.
이 현실은 보기에 따라서 교회가 교회 되는 일에 유익한 상황일 수 있다. 사실, 초대형 교회의 형태는 미국식 자본주의 혹은 상업주의가 만들어 낸 현대적 산물이다. 거대 교회를 이루는 것이 세속적으로는 성공처럼 보이고 자신의 위상을 키워주는 데에는 유익해 보일지 모르나 ‘교회 됨’이라는 차원에서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소그룹 사역이다. 교회 안에 작은 교회들을 두어 교회 됨을 살려 보려는 노력이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소형 혹은 중형 교회가 이상적인 모델일 수 있다. 어쩔 수 없어서 작은 교회가 되더라도 교회 됨을 성취로 목표로 삼는다면 얼마든지 의미 있는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 교회의 목회자는 회중에 노출되는 시간이 적다. 그렇기에 인격적인 허점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효율적인 목회를 할 수 있다. 그런 사례는 한국 교회에 넘쳐난다. 그래서 대형 교회 목회자가 은퇴 후에 인격의 마각을 드러내는 일이 많다. 외적 성공으로 인해 자신의 허상에 사로잡혀 살아온 것이다. 반면, 소형 혹은 중형 교회의 목회자들은 회중에 노출되는 시간도 많고 노출되는 영역도 넓다. 그렇기에 인격적인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이 쉽게 드러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설교와 아무리 놀라운 은사가 있더라도 인격적인 결함이 있으면 그 공동체는 지속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생각한다면, 이민교회 목회자들은 더욱더 인격과 성품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만일 소형 혹은 중형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자신의 성품을 갈고 닦는다면 은퇴 후에도 여전히 성숙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영적으로 보자면, 대형 교회보다는 중형 혹은 소형 교회가 훨씬 더 안전한 곳이라 할 수 있다.
1. 무엇으로 목회하는가?
3. 복음적 성품의 특징
4. 무엇을 어떻게 할까?
L.I.D. 2019 리더십 저널
김영봉 목사
와싱톤사귐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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