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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정의로서의 경제 정의 (2)

By Yoon-Jae 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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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양극화와 불평등 극복을 위한 교회의 선교 방안

하나님의 정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자선과 시혜를 넘어 ‘정의’를 요구한다. 정의(justice)는 카를 마르크스의 창작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서 전체를 관통해 흐르는 대주제다. 구약 성서는 분명히 말한다. 야훼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미가 6:8)이다. 신약 성서 또한 분명히 말한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정]의를 구하라”(마태복음 6:33)고 가르치셨다. 그럼에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정의와 사랑의 잘못된 이분법에 빠져 있다. 구약의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정의’의 반대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정의의 반대는 ‘인간의 불의’다. 예수께서는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정의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임을 가르치셨다.

예수님 당시 일일 노동자들이 일 년에 버는 돈은 대략 200데나리온쯤이다. 일 년은 365일이지만 매일 일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보통 200일 정도 일하기 때문이다. 당시 한 유대인 가정이 일 년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 비용은 220데나리온 정도였다. 매우 쪼들리는 살림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당시의 일일 노동자들은 하루 벌어 하루 혹은 기껏해야 이틀을 살았다고 보면 맞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예수께서 들려주신 포도밭 주인 비유의 골자는 1시간 일한 사람, 3시간 일한 사람, 6시간 일한 사람, 9시간 일한 사람, 그리고 12시간 일한 사람 모두가 동등하게 당시의 ‘온전한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정]의”라는 사실이다. 당연히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정의는 인간의 통상적인 경제적 정의 이해에 충격적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인 상황에서 1시간 일한 사람에게 12분의 1데나리온만 준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하루도 연명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공정’이 곧 정의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관점에서는 정의롭게 보일지 몰라도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의 눈에는 비열하고 잔혹할 뿐이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0장의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경제적 정의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도록 인도한다. 경제 활동의 목적은 부의 축적이 아니라 생명 유지다. 인간은 살기 위해 일한다. 그렇다면 경제적 정의는 ‘모두’가 살게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존엄성 그리고 기본적 삶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정의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다.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업적에 따른 분배’라는 인간의 정의론을 넘어서 신비한 하나님의 정의를 묘사한다. 하나님의 정의는 효용성이나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정의는 모든 생명을 살리고 풍성하게(요한복음 10:10) 이끄는 것이다. 이 정의는 자비에 기초한 정의다. 사랑에 기초한 정의다. 은혜가 충만한 정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사랑은 충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정의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성서가 가르치는 정의는 ‘적극적 정의’다. 그것은 업적에 기초한 소극적 분배가 아니라 필요에 따른 적극적 돌봄이다. 사실 이런 정의관은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신념에서 나왔다. 사상사적으로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는 생각의 원천은 기독교의 성경이다. 하지만 경험으로 볼 때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라. 모든 인간은 능력의 차이가 있으며 절대로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금방 알게 된다. 그럼에도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는 생각은 기독교적 인간 이해의 결과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동등성은 기독교적 믿음과 신념에 의해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메시지는 보편적인 메시지일 뿐만 아니라 평등주의적 메시지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지만, 나만 사랑하지 않으신다. 온 세상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세상(cosmos, 우주 만물)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한복음 3:16)라고 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적 사랑’(cosmic love)이다. 이 사랑이 정의의 원리다. 이 정의가 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으로 신음하는 온 세상을 치유하고 화해하며 진정한 평화와 일치를 가져올 수 있는 하나님의 정의다.

하나님의 정의로서의 경제 정의 (3)

장윤재 Ph.D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LID Leadership Journal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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