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정의로서의 경제 정의 (4)
By Yoon-Jae Chang
경제 양극화와 불평등 극복을 위한 교회의 선교 방안
나가는 말
성서가 가르치는 ‘하나님의 정의’에 기초한 교회의 경제 정의 운동 혹은 선교는 사회적 실효성을 따지는 운동이 아니다. 교회가 나서서 무엇이 바뀌겠는가를 물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운동은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신앙 운동이기 때문이다. 경제 문제는 신앙과 신학의 본질적 문제이며, 경제 정의는 교회를 맘몬의 포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게 개혁하는 일이다. 이것은 밖으로의 운동이 아니라 내 안의 운동이다. 이것은 이 땅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맘몬의 포로가 될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차대한 신앙고백 운동이다.
인간은 정의를 바란다. 인간이 정의를 바라는 이유는 불의(injustice) 때문이다. 우리는 정의에 대해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불의가 무엇인지는 안다. 199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하버드대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교수는 우리 주위에는 우리가 제거하기를 원하고 또 제거할 수 있는 명백한 불의가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마하트마 간디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결코 완벽한 정의를 이루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그들 앞에 있는 분명한 불의를 제거하기 위해 힘썼다. 그래서 센은 우리가 정의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가 무엇인지 추상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제거할 수 있는 불의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명히 확인하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는 이렇게 권고한다. “완전한 정의가 무엇인지 찾기보단, 현실에 있는 명백하고 확실한 불의를 찾아서 그것을 막으십시오.” 하나님의 정의가 무엇인지 새롭게 이해했어도 선뜻 이에 나서기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말이다.
교회를 맘몬의 포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게 개혁하라.
경제의 기본 목표는 인간의 기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의 기능과 목표도 이와 같아야 한다. 시장의 자유 그 자체가 경제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장은 인간의 이익에 봉사하는 수단이며 도구여야 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닌]”(마가복음 2:27) 것처럼, 시장이 사람을 위해 지어졌지 사람이 시장을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의 최우선 순위는 사람의 기본적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이고, 시장은 이를 위한 충실한 도구일 때에 그 의미가 있다. 물질적 재화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교역과 투자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평등과 좋은 직업 그리고 깨끗한 환경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수단이어야 한다. 경제는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오이코노미아’(oikonomia), 즉 돈의 축적이 목적인 경제가 아니라 인간 생명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우선이 되는 경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경제는 사실 한국인이 오랫동안 말해온 경제(經濟), 즉 ‘경세제민‘(經世濟民, “세상을 경영하고 민중을 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필자는 이런 경제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러”(요한복음 10:10) 이 땅에 오신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믿는다.
장윤재 Ph.D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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