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극복을 위한 기독교 신학과 사역 (3)
Hwa Young Chong
양극화 극복을 위한 초대교회의 사역
초대교회는 예수의 화해와 치유와 협동의 공동체를 지속하며 세워졌다. 초대교회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도행전 2장에 의하면 오순절에 성령 강림을 경험한 후 베드로의 설교에 감동한 이들이 세례를 받으며 교회 공동체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날마다 함께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고, 기도하는 일”에 전심을 다했다(사도행전 2:42).
그 후 세례와 성찬이 점진적으로 성례로 발전하고 양극화 현상이 지속되는 사회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함께 모이며 교회는 성장한다. 신분 격차가 엄격했던 사회 제도 아래서 초대교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갈라디아서 3:28) 세례받은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공동체를 이룬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는 신분의 양극화를 극복하는 평등과 해방의 공동체를 선언하는 일이었다. 또한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에베소서 4:4~5)라고 선포하며 하나로 단결된 공동체의 힘을 강조했다. 여기서 하나라는 것은 모두가 동일화 되는 하나unity in uniformity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과 공동체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가운데 협력하는 하나unity in diversity임을 기억해야 한다. 즉, 갈라디아서에서 예로 제시하는 유대인/헬라인, 노예/자유인, 남자/여자가 하나 됨은 그 다름이 없어져서 동일해진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각자의 개성과 특성을 유지하면서 제도적인 차별과 배척을 없애도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서 배우며, 모두가 같은 권리와 자격을 가지며, 협동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의 공동체가 됨을 뜻한다.
초대교회는 신분의 양극화를 극복하는 평등과 해방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하나의 공동체가 한 식탁에 모여서 하나의 빵을 함께 나누고 하나의 잔에서 함께 마시며 모두 같은 식사를 하는 자리가 성찬이다. 성찬은 예수의 식탁 공동체의 계승이다. 당시 깨끗한 자/더러운 자 혹은 깨끗한 음식/더러운 음식을 분리했던 유대교의 정결법을 신경 쓰지 않고, 예수는 죄인 혹은 정결하지 않다고 간주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하였다. 그의 식탁에는 함께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죽음을 앞두고 체포되기 바로 전에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행동도 식탁의 교제였고,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가운데 항상 함께하실 것임을 약속했다. 그 후 교회의 예식으로 발전한 성찬을 통해 교회는 예수가 식탁 공동체에서 보인 은혜와 사랑과 용서를 기억하고,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성령의 힘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비전에 참여하고 모두가 함께하는 그 큰 잔치를 미리 맛보게 된다.
이렇듯 세례와 성찬을 통해 하나 된 교회는 사회의 양극화를 극복하고 예수의 화해와 치유의 공동체를 계속할 사명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단합과 단결의 메시지가 항상 환영받지는 못해왔다. 분열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보인다. 마크스 보그와 존 도미닉 크로산은 바울의 이름으로 쓰인 서신에는 최소한 두 개의 다른 입장이 보인다고 한다. 하나는 “진보적 바울”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적 바울”이다.[1] 원래의 바울은 양극화된 사회 구조 안에서 불의와 학대를 없애고, 평등과 정의를 옹호하는 교회 공동체를 주장하는 진보적 바울인데, 교회가 제도화함에 따라 체제 유지에 더 관심이 있는 보수파가 바울의 이름으로 서신을 썼기에 상반된 신학이 바울 서신에 나타나는 것이다. 예수-바울로 이어졌던 평등의 진보적 입장이 점차 사라지고, 성의 평등에서 여성은 교회에서 침묵하라는 메시지로 바뀌는 등의 억압 구조가 다시 도입되었다.[2] 그럼에도, 진보적 바울을 회복하고 예수-바울 공동체의 이상을 회복하고 추구하며, 세례와 성찬을 통한 하나 됨을 회복하여 양극화를 극복하는 일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 계속 지속되어 왔다.
초대교회부터 발전한 성육신의 신학은 신성과 인성이라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양극에 있는 두 현실이 예수에서 하나로 실현됨을 말한다. 이는 서로 다른 신성과 인성이 예수 안에 반반씩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히 인간이요 온전히 신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성육신의 그 근본이 신비이고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예수 안에 이미 양극이 공존할 뿐 아니라 서로 협력하며 세상을 구원한다는 놀라운 신학이다.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 나라는 양극이 공존하는 가운데 서로 싸워서 한쪽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운데 협력하고 협동하며, 함께 선을 추구하여, 모두에게 득이 되는 윈윈win-win 공동체 모델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셨다(에베소서 2:14)는 초대교회의 신앙 고백을 오늘날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예수가 그랬듯,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벽을 허물고 평화와 화해의 사역을 할 수 있을까? 성육신의 신학을 근간으로 오늘날 기독교는 양극화로 분열하고 서로 적대시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이 시점에 어떤 새로운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가?
정화영 Ph.D
연합감리교회 북일리노이연회 감리사
[1]
Marcus J. Borg and John Dominic Crossan, The First Paul: Reclaiming the Radical Visionary Behind the Church’s Conservative Icon (New York: HarperOne, 2009).
[2] John Dominic Crossan, The Challenge of Paul: Theme 3 (The New Paradigm Series by Faith and Reason. 2017). Script of the original video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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