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직면한 양극화 문제에 대한 소고 (3)
By Jaeho Jang
과학 시대에 성경 해석의 양극화
진보냐 보수냐의 갈등은 과학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현대 과학의 성과를 부정하며 성경을 문자 그대로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창조과학’ 운동이 대표적 예다. ‘젊은 지구 창조론’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지구 6천 년 설을 주장하며,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본다. 창조과학 운동은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도인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에게서 시작되어 휘트콤John Whitcomb과 모리스Henry Morris의 <창세기 홍수>Genesis Flood, 1961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운동이다. 이들의 주장이 한때 미국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동력을 많이 잃었고, 현재 한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창조과학은 성경을 문자적·과학적 사실로 보며 현대 과학의 성과를 부정한다. 이런 유사 과학적 성경 해석은 안타깝게도 기독교와 성경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현상을 초래했다. 기독교는 비과학적 집단으로 사회로부터 조롱받으며, 진화론과 빅뱅 우주론을 배우는 중고등학생들은 혼란을 느끼며 교회를 떠나가고 있다.
과학신학이 주전공인 필자는 과학과 신학(신앙)의 관계에 대한 강연을 종종 하기에 이를 통해 혼란을 느끼고 교회를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몇 년 전 계룡에 있는 한 장로교회 중등부 수련회에 ‘과학과 신앙’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적이 있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는 종종 강연했지만, 고등부도 아니고 중등부 수련회에 강연 요청을 받아서 처음에는 거절했다. 중학생들이 이 주제에 대해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하는 선입관 때문이었다. 하지만 초청하신 목사님께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련회에 듣고 싶은 주제에 대해 설문 조사를 했는데, 가장 많이 나온 주제가 ‘진화’였기에 내게 연락을 주셨다고 하셨다. 상황을 이해하고 학생들에게 과학이 신앙과 모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을 통해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게 됨을 설명해 주었다.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수많은 학생이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과 교회에서 말하는 창조과학적 설명 사이에 괴리를 느낀다. 이들 중 많은 학생이 중고등학생 때에는 부모님 눈치 보느라 교회에 출석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경은 각 시대의 언어로 계속해서 재해석되어야 당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울 서신의 상당 부분은 바울이 당대의 언어로 기독교를 변증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였다. 바울의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전 세계로 퍼질 수 있었다. 예수의 위격 논쟁, 삼위일체 교리 등 여러 공의회를 통해 결정된 교리들도, 성경을 당대의 언어와 철학으로 재해석한 분투의 결과다. 기독교 2천 년의 역사는 하나님만이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예수가 우리의 구원자라는 복음의 진리를, 각 시대의 언어와 철학으로 해석했던 변증의 역사였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려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뒤로 하고, 현재의 언어와 철학으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불과하다. 3세기 알렉산드리아를 대표하는 교부인 오리게네스Origenes는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아침과 저녁이 있다고 말해지는 첫째 날과 둘째 날과 셋째 날이 어떻게 해와 달과 별이 없는 데도 있을 수 있냐고 묻지 않겠는가? 게다가 첫째 날에는 하늘도 없었다! ... 나는 이런 창조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것이 역사적 유사성을 갖기는 해도 어떤 불가사의한 신비를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First Principles, 4. 3.).
1,600여 년 전에 살았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창세기 1장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받은 저자가 그 당시의 제한된 언어와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린아이가 이해할 만한 수준으로 기록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통상적으로 비그리스도인들도 땅과 하늘, 이 세상의 다른 요소들, 별의 운동과 궤도, 별의 크기와 상대적 위치, 일식과 월식의 예측, 해와 계절의 순환, 동물과 나무와 돌 등에 대해서 얼마간의 지식을 갖고 있으며, 이 지식이 이성과 경험으로부터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이때 혹 어떤 그리스도인이 성서의 의미를 제시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주제에 관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어떤 불신자가 듣게 된다면, 그것은 부끄럽고 위험한 일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무지를 드러내 보여주면서 조롱하고 경멸하는 그러한 당혹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1. 14. 28).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모든 식물을 창조하셨는데, 이것은 그 당시에 완성체의 모습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식물이 땅속에서 움이 트게 하는 잠재력을 창조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Question 74: All the Seven Days in Common”). 즉 만물이 현재의 모습으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도록 창조되었다고 본 것이다.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성경 기자가 창세기를 기술할 때, “먼저는 유대인들을 위해 썼고, 당시의 갓난아이와 같은 상태에 있는 교회를 고려해서 그들에게 맞는 언어를 택해 오감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형태를 중심으로 사건을 묘사했으며, 그 형태 아래 숨겨진 신비들은 하나님의 조명 아래에서 점차 드러나도록 했다”(Wesley’s Notes on the Bible)라고 말한다.
요약하면,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존 웨슬리는 모두 창세기 창조 기사는 과학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고방식과 이해의 한계를 고려해 당대의 언어와 철학으로 기록한 것으로 간주했다. 즉 창조 기사를 문자적으로 읽는 것은 현대 과학과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전통과도 맞지 않게 된다.
따라서 과학 시대를 살아가면서 현대 과학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복음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을 거부하는 것이다. 변치 않은 기독교의 핵심인 복음은 좋은 땅에 뿌려져야 100배의 결실을 보게 된다. 목회자 대부분은 과학자가 아니기에 진화론, 빅뱅 이론 등의 과학 이론들의 사실 여부에 큰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학계에서, 그리고 사람들 대부분이 받아들이는 이론이라면, 그것들을 어떻게 목회 현장에 적용해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설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해 현대 과학을 부정하며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기독교가 아니라, 이 시대에 영향력 있는 기독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창조과학에 빠진 사람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과학이 증명해 준다고 생각해야 믿어지는 연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똑같이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버려 구원하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처한 시간과 상황을 고려해 이들에게 친절한 언어로 올바른 성경 이해를 전달해 준다면, 과학 시대에 제기되는 성경 해석의 양극화 문제도 다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1]
장재호 Ph.D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 조교수
[1] 필자가 운영하는 Youtube 채널 “과학과신학연구소”에서 관련 영상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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