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교회의 미래 (1)
By Heecheon Jeon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 즉 탈근대주의 문화 현상은 기독교 교회에 많은 도전과 함께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탈근대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은 인간 이성의 자유 그리고 파편화된 진리를 기반으로 한 사회 문화적 현상이며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추구이지만,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그 파편적 진리에 맞서 보편적이고 통일된 진리를 이상으로 추구하고 이 기반 위에 거대한 신학적 담론을 시대별로 완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이 상반된 두 거대한 축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교회가 다시 시대정신을 주도하는 교회로 개혁할 수 있을 것인가를 논해야 할 때라고 본다. 21세기 교회의 미래는 시대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문화를 주도할 수 있는 창조력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필자는 여기 제한된 공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함께 미래의 교회 모습을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서구 유럽은 이미 세속화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오랫동안 전통적 교회의 현주소를 상실해 가고 있지만, 어떤 모습으로든지 탈바꿈하려고 노력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21세기 초부터 급속도로 진행된 세속화의 물결과 새로운 반종교적 영성 운동(The Nones; “spiritual, not religious”)으로 인해 교회는 “포스트모던” 문화를 재해석하는데 주력한 나머지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창출하고 변화하는 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지 못했다. 예를 들면, 후기 산업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보산업과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과 정보의 급속한 발전으로 사회 전체가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고, 도시화의 진행 속도가 인간이 적응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이뤄가는 시간보다 너무 빨라서, 비인간화, 가치관의 이중적 모호함, 실용적 가치관의 남용, 제도나 시스템에 대한 극단적 거부반응, 빈부 간의 격차 심화 등 여러 가지 부작용들을 초래하면서도 지금 세계는 거침없이 빠른 속도로 변화해가고 있는데, 아쉽게도 이런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21세기의 교회를 찾아보기 어렵다. 예측하긴 어렵지만, 연합감리교회는 이런 포스트모던의 물결 속에서 반드시 교회의 현주소를 찾고 창조적으로 사회를 개혁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탈근대주의,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주의를 탈피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근대주의의 이상을 완성하려는 철학적 시도다. 역사적으로 보면,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의 갈림길에서 파생된 문화 현상인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창조적 문화 현상이라기보다는 근대 이성주의를 완성하려는 철학적 사유, 즉 인간 주체와 해방이라는 자유적 인간성 회복을 완성해보려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인간 정보지식산업의 엄청난 발전과 맞물려 사회와 문화는 인간이 가진 능력을 극대화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본주의와 지식주의 사회로 점점 심화하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말한 것처럼, 근대의 거대 담론(grand theory)의 시대가 지나가고, 파편화되고 구체화한 진리 담론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회 문화적 현상 속에는 교회의 존재가 위협을 받고 기독교라는 종교의 역할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구화의 물결 속에서 종교는 더욱 밀착된 지구적이면서 동시에 지역적인 문화 현상(glocalization)으로 탈바꿈해 가고 있다.
교회는 다문화를 지향하는 지구적 교회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문제는 교회의 문화와 제도는 급변하는 사회와 문화에 대처하지 못했고, 교회 안에 문화 지체 현상이 일어났다. 이런 문화 현상의 엇박자는 세대 간의 차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적 상황에서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가 교회에 대한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강단에서 목사가 서로 다른 4, 5세대들을 상대로 설교하고 소통해야 하는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한국은 한국전쟁 이전과 이후, 80년대 이전과 이후의 세대, 21세기 이후의 세대가 한국의 근대 또는 후기 산업화와 맞물려 교회의 부와 양적 성장이 낳은 새로운 종교 양상, 즉 부와 권력이 축적된 교회의 상업화 현상을 보인다. 미국 내 연합감리교회도 마찬가지로 세대 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 향수에 젖은 너무 진부한 교회, 시대적 언어를 상실하고 효과적인 소통을 할 수 없는 정체된 교회, 거대한 제도와 행정으로 불필요한 과정과 절차 때문에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고 대중 속에 파고들지 못하는 폐쇄적 교회가 되어버렸다. 지난 60여 년 동안 여성 안수, 흑인 인권 문제, 다문화와 다인종 목회, 그리고 성 소수자의 인권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겪으면서, 미국 내의 교회는 미래를 향한 길목에서 극한 진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지구 다른 편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교회들은 이와는 달리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부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콩고, 코트디부아르, 나이지리아, 가나, 필리핀, 중국 등 지구촌 다른 나라들은 기독교 신생국답게 열정적 예배와 공격적인 전도, 공동체적 생활 방식으로 교회와 사회가 하나로 움직이며, 신도들에게는 현실에서 겪는 좌절과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공동체를 제시한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과 기아 속에서, 정치적 불안과 강제 이주의 상황 속에서 교회라는 대안 공동체를 찾고 있고, 교회는 적절하게 그러한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구 기독교는 이런 대안 공동체의 역할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여기에서 교회의 대안 공동체 역할이 반문화적 영적 각성 운동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반대로 2천 년의 교회 전통의 명맥이 유지되어온 데는 사회와 문화를 주도한 이런 대안 공동체의 역할 때문이다. 예를 들면, 중세 수도원 운동과 부정의 신학을 통해서 교회는 획일화될 수밖에 없던 “정통 신학”의 계승을 해체할 수 있었고, 역사적 다양성의 길을 열어놓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남미 해방신학을 비롯한 한국의 민중신학, 미국의 흑인 해방신학과 여성 해방신학 등 사회 속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에게 대안적 공동체의 희망을 심어줌으로써 교회는 깊숙이 그들의 삶 속에서 동일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이런 대안적 신학과 교회의 응답은 시대가 바뀌면서 한계상황에 도달하게 된다. 한 시대의 소외 계층이 다른 시대의 억압 계층이 되고, 해방의 신학이 지식 권력의 제공자가 되면서 또 다른 소외 계층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교회가 대안적 공동체로서 사회의 소외 계층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영적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문화 현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창조적으로 기독교 문화를 계승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다. 다시 말하면,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열려있는 교회가 어떻게 하면 교회답게 다시 개혁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전희천 목사 Ph. D.
아이오와연회 Riverview Park District 감리사
LID Leadership Journal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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